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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 서울 근교 사찰 모음

렛고잉 2022. 2. 3.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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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산사만큼 고요한 풍경도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산과 서울 근교 천년 고찰 5곳을 소개합니다.


1. 은평구 진관사

 


진관사는 고려 8대 현종 2년에 건립된 유서깊은 천년 고찰입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사자와 생자를 아우라는 범국민적인 국가행사로 수륙제를 봉행한 수륙도량이었습니다.


2009년 칠성각 해체 복원 과정에서 3.1운동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와 독립신문, 기타 신문자료와 경고문 등 총 17점의 사료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자료들은 진관사 백초월 스님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해요.

'진관사 태극기'로 유명합니다.

 

 



2. 북한산 삼천사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였다고 합니다.
삼천사는 임진왜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후에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습니다.



3. 고양시 흥국사

 

고양 흥국사는 신라 문무왕 1년(661)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원래 이름은 흥서사입니다. 숙종12년 (1686)에 중창되었습니다. 영조 46년 (1770)에 영조가 친행한 뒤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보광사와 마찬가지로 생모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아 약사전을 증축하고 미타전을 신축하였으며 상궁들이 번갈아 머무르면서 선학을 익히도록 하였습니다.

흥국사의 중심 법당은 대웅전이 아닌 약사전(경기 문화재 제 57호)으로 고종 4년(1867)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문화재로 1792년에 제작된 영산회상도 (경기유형문화재 제 296호), 극락구품도(경기유형문화재 제 143호), 목조아미타여래 좌상(경기유형문화재 제 143호), 괘불(경기유형문화재 제 189호)등이 있습니다.

약사전 뒤편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의 백운대를 비롯해, 인수봉, 원효봉, 노적봉 등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4. 파주시 보광사

 


보광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지은 절로 원래 이름은 산의 이름을 딴 '고령사'였습니다.

 

보광사는 조선의 21대왕 영조와 친모 숙빈 최씨와 깊은 연관이 있는 절입니다. 영조는 보광사에  어실각을 짓고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시고, 그 옆에 향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도 향나무가 남아 있어 영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조는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대대적으로 중수하게 했는데요.  대웅보전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만세루는 6.25전쟁에서도 타지 않고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5. 의정부시 회룡사

 


의정부시 회룡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최초의 이름은 '법성사'였습니다. 경순와 경보스님, 국사 혜거, 자초 스님 등이 중창하였습니다.


자초는 이성계와 함께 이곳에서 3년간 수도하였고 이 성계가 정계로 나간 뒤에도 홀로 남아 사찰을 중건하였습니다. 후에 왕위에서 물러난 이성계가 함흥에 머물다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이 절에서 수행하던 자초를 찾아옵니다. 이성계를 본 자초는 ‘회란용가’라 하면서 기뻐했다고 하며, 이성계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여 '회룡사'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룡사 5층 석탑, 의상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사찰 유물로  '신중탱화'와 오층석탑 그리고 석조가 있습니다. 신중탱화는 1883년 수락산 흥국사에서 만든 것이며, 오층석탑에는 의상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석탑과 석조 조선 전기의 유물로 추정됩니다.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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